2018년 1월 30일 화요일

노가다: 자문자답

 비록 노가다 초짜이지만 잠깐의 경험으로 노가다를 경험 해보려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코자 자문자답 하는 글을 써볼까 한다.


Q. 노가다는 얼마나 힘든가요?
A. 복불복.

 '어디서', '무슨 일'을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 중에서도 누구와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것 같다. 일이 힘들어도 협업이 되고 일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버틸만 하다. 하지만 감독자가 지랄맞아서 작업을 중구난방으로 시킨다던지 생산성도 없는 잔소리를 해대면 괴로워진다.

 초짜인 경우 인력 사무소에서 알아서 난이도 조절을 해주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달리 말하자면 이 말은 초짜는 처음에 일 받기가 힘들 수 있다는 말이기도 같다. 체력은 팔굽혀펴기 한번에 25개 정도 가능한 보통 수준이면 되고 몸 움직이기에 큰 장애만 없으면 가능하다고 본다.



복불복 게임
까나리 액젓을 먹을 것인가 아메리카노를 먹을 것인가
같은 일당이지만 상대적으로 쉽거나 좀 더 힘든 일은 분명 존재한다.


 Q. 자격이나 준비해야 할게 있나요?
 A.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과 안전화가 있어야 합니다.

 기초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 이수증이 없어도 일하는 곳이 있긴 한거 같던데 걸리면 노동자가 벌금을 내는건 아니지만 고용주가 벌금을 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인력소를 처음 가면 먼저 이수증이 있냐고 물어본다. 교육 이수증은 별거없고 그냥 강의를 4시간 듣는걸로 쉽게 발급 받을 수 있다. 비용은 4만원 정도가 든다. 취약 계층 비용 감면 혜택이 있는걸로 아는데 대상자라면 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보통 안전화는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며칠 일 해보니 안전화 안 신고 작업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런데 이건 작은 현장 얘기고 좀 큰 현장은 아마 무조건 있어야 할것 같다. 내 경우는 큰 현장을 안가봐서 모르겠다. 안전화는 싼건 3만원대부터 비싼건 몇십만원대 까지의 제품으로 다양하다. 본인은 5만원대의 제품을 구매했다.

 그외에 안전모나 목장갑은 아무리 작은 현장이라도 지급해 준다. 그런데 마스크는 안 주는 경우가 많으니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 별도로 구입하는게 좋다. 이런저런 비용 때문에 노가다는 일 시작할때 대략 1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게 된다.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은
정부 지원으로 취약계층에 해당하는 사람에 한해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다.


 Q. 경험삼아 해보려는데...
 A. 하지 마세요.

 굳이 꼭 이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면 다른 일 하는게 낫다고 본다.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사람에 한해 권할 순 있는데 그래도 왠만하면 추천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 가장 큰 것이... 건설 노동 현장은 통계적으로 하루에 2명 정도가 사망하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통계라는 것뿐이므로 실제로 그렇게 죽을 일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벼락 맞을 확률과 같다는 로또도 일주일에 대여섯명씩 꼬박꼬박 당첨자가 나온다. 그 당첨자가 내가 아니라는 법은 없다. 적어도 서빙 알바 하다가 죽을 걱정은 안해도 되지 않나. 실제로 건설 현장 가서 직접보면 위험한 요소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니는 왜 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죽거나 나쁘거나'라는 마인드거든요.


 Q. 어떤 사람들이 일하나요?
 A. 중장년층과 조선족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중장년층의 나이대이고 가끔씩 본인을 포함한 20~30대도 보이긴 한다. 10명중에 2명쯤 되는듯. 그리고 억양을 잘 들어보면 사투리인듯 어디 사투리도 아닌 말투가 보이는데 이런 사람들은 조선족이다. 아주아주 희귀하게 아줌마도 있는데 이런 분들은 도배나 미장하시는 기술자분이었다.

 솔직히 처음 이 일 하기 전에는 왠지 하루살이들만 있는거 아닐까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자기 차에 장비 싣고 이동하면서 기술직, 전문직으로 마치 프리랜서와 같은 느낌으로 활동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게 사람들 나쁜 선입견처럼 인생 막장만 모인 곳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인생 막장이라고 이 바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막장일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건데요..."
선입견을 갖지 말자.


 Q. 얼마 버나요? 급여는 어떻게 받아요?
 A. 현재 2018년도 기준으로 잡부는 13만원 입니다.

 내가 다니는 인력 사무소 기준이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른다. 파견 나갈때 사인지라고 현장 주소와 담당자 전화번호가 적인 영수증 같은걸 발급 받는데 여기에 잡부는 13만원이라고 단가가 적혀 있다. 작업이 끝나면 다시 인력 사무소로 이동해서 소개비를 제외하고 11만 4천원을 당일에 현금으로 받는다. 기술이 있으면 좀 더 받는다. 정확한 금액은 모르겠다.



5만원하던 일당이 10만원 된 시대
하지만 물가도 그만큼 올랐지... 결국 제자리


 Q. 겨울엔 일감이 없다던데?
 A. 사흘에 하루 정도...

 3일 사무소 나가면 하루 일 받는 꼴. 그런데 아무리 일 없다고 해도 이 바닥에서 자리 잡은 사람은 매일매일 하는것 같다. 인력 사무소 소장님 말 들어보니 여름에는 하루에 200명 내보낸 적도 있다고 하니 여름엔 일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보통 노가다를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는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도 않다. 일단 겨울에는 일감이 없어서 매일 일할 수가 없고 매일 일 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런 일을 안해본 사람이 매일 나가서 노가다를 하는게 체력적으로 쉽지가 않다. 부상을 당해서 몸이 아파보면 의지만으로 안되는 것들이 있단걸 알게 된다.



한파로 인해 물이 이렇게 얼어버리면 작업이 안되서 쉬는 경우가 많다.


 Q. 정말 그렇게 위험한가요?
 A. 네.

 이거는 사실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 바닥에 잔뼈 굵은 사람들은 그렇게 위험할거 없다고 보는 것도 초짜인 내 시각으로 보면 분명 위험한 것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야 맨날 보는 것들이니까 감각이 둔해진것 뿐이고...

 기초교육 할때 4시간 내내 주입 시키는게 위험하니까 조심하라는 내용이 80%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할때도 위험 요소들 많이 보였는데 실상은 내가 위험을 인지해도 뭘 어쩔수가 없다. 그냥 적당히 피해가면서 사고 안나길 바라는 수 밖에...

 한 예로 내가 얼마전에 40kg 시멘트 짊어메고 계단 올라가다가 놓친 적이 있는데 그 계단에 난간 같은게 없었다. 균형이라도 잃어서 떨어졌으면? 시멘트가 떨어져서 누가 맞았으면? 최소 어디 부러지거나 재수 없으면 내 머리가 깨지거나 남의 머리가 깨지거나 했을 것이다. 당시에 안전모도 안 쓴 상황이었다. 나만 그런것도 아니고 내가 쓰기 싫어서 안 쓴게 아니라 다들 안쓰고 있었고 누구 한명 쓰자고 말한 사람도 없다. 이건 안전 관리자가 신경 써주지 않으면 실제 인부들이 챙기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 작업을 하다보면 시야가 좁아져서 내가 일하고 있는 그 앞 상황밖에 안보인다. 위험을 인지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말이다. 지금 하는것만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다른거 신경쓸 겨를이 있겠는가 말이다. 예전에 삽질하다가 힘에 부쳐서 균형을 잃고 잠깐 주저 앉은 적이 있었는데 앉은 자리에 뭐라도 있었으면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위험을 감지해줄 안전 관리자가 필요한 것이다.



건설 현장 사고 사진
이런 사고가 나면 무슨 수로 피하나, 내가 정신 차리고 있다고 피할 수나 있을까


 Q. 노가다 왜 하나요?
 A. 생뚱맞은 얘기지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본인은 지난 년도에 삶에 지쳐서 실의에 빠졌고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전에 안해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를 갔다오고 노가다도 한번씩 해본다는 것 같아서 '군대는 갔다왔고 노가다도 남들 다 하는거라면 나라고 못하겠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뭐랄까... 정신 재무장을 위해서 해병대 2박 3일 캠프 같은거 가는 기분으로?

 또 다른 한편으론 잡념을 떨치기 위해 몸을 막 굴리고 싶기도 했다. 몸이 힘들면 잡념이 달아날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 이 부분은 모르겠다. 몸이 힘들고 아프면 힘들고 아픈만큼 우울해지는거 같던데... 아마 우울증이 별게 아니었다면 '병'이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정신과를 가서 약물의 도움을 받는게 좋을것 같다.

 그리고 인력소의 장점은 본인이 스케쥴을 조정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일 하고 싶을때, 또는 일 할 수 있을때 나가면 된다. 물론 일감을 받고 안 받고는 사무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서 생각대로 안되지만.

 어릴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자서전 같은게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있다. 80%는 노가다 경험담이었고 뒤의 20% 정도가 공부하는 요령같은거에 대한 거였던거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아무튼 저자가 노가다 일 하면서 공부해서 서울대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던것 같다.

 그렇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의 저자처럼 노가다를 하면서 틈틈히 공부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서른 넘어서 한동안 안하던걸 하려니 쉽지는 않다. 그 사람처럼 무슨 대학 가려는 공부는 아니고 자격증 공부이지만 집중력이 한시간을 못가는것 같다. 하지만 추운 날에 덜덜 떨어가면서 힘들게 일하던거 생각하면 '그래 역시 공부가 제일 쉽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이 일을 하고 있는것이다.


 일단 자문자답은 여기까지만... 나중에 경험이 더 쌓이면 추가할 예정.

2018년 1월 27일 토요일

노가다: 3일차

 2018-01-25 목요일
 요즘은 불면증 때문에 큰일이다. 좀처럼 잠이 안온다. 선잠 자다가 시간이 되서 집을 나섰다. 좀 밍기적거리다 보니 살짝 늦은 감이 있었는데 그때가 5시 15분쯤이었던것 같다. 하지만 날이 추워서 그런가 그래도 1등으로 도착했다.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왔네"라고 소장님이 말씀 하신거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제 거기서 나오라고 했다면서요"

 "네 퇴근할때 내일도 나오라고 하셨었죠"

 "거기로 가면 되요"



너무 추웡


 '어제는 지하철로 이동했으니 오늘은 버스 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대기하다가 45분에 맞춰 사무소를 나섰다. 전날에 경로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본터라 내릴 정류장만 놓치지 않으면 늦을 일은 없을것 같았다. 아침이라 차가 안 막혀서 그런것인지 금방 도착했다. 걸어서 현장까지 도착한 시간을 다 합쳐도 25분만에 도착한것 같다.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를 하나 산 후 테이블에 앉아서 '좀 일찍와서 대기하고 있다'고 작업소장님께 문자를 보내니 '어제 밥 먹었던 식당'으로 가라고 하신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이미 인부들 네명 정도가 있었다. 다른 현장 사람들일수도 있으니 난 다른 테이블에 앉았는데 식당 주인 아줌마가 같은 테이블에 앉으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합석했다. 기억나는 얼굴이 있나 살펴보는데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조금 기다리니 밥이 나오고 사람들도 더 들어와서 식당이 꽉 찼다.

 밥을 먹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냐'고 하는것 같았다. 사람들 시선이 다들 나한테 쏠렸다. "저 어제도 여기서 일 했었는데요"라고 대답했는데 왠지 내가 무전취식이라도 하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저 사람은 소장님 직영'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밥값 계산을 하기 위해 인원 카운트를 하던 도중 내가 껴있으니 그런 일이 생긴것 같았다. '직영'이란 말의 의미는 작업소장님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인부라는 뜻인것 같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밥을 먹고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현장으로 이동했다. 잠깐 몸을 불에 녹인 후에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나, 어제 소장님은 왜 안 보이나'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꺼내보니 이미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와 있었다. 그래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니 전화도 안 받고 어디서 뭐하고 있어?!"

 "아 저 @@동 현장에 있습니다."

 "아 거기는 왜 가 있어!?"

 "다른 분들 가시길래 따라 왔습니다."

 "내가 식당에 있으라고 했잖여!"

 "아... 그랬나요. 그럼 다시 식당으로 가겠습니다."

 "아니 됐어 내가 차 타고 갈태니까 앞에 있어!"

 난 '식당에 가라고 한게 밥 먹으러 가라는 뜻인줄 알았지... 밥 먹은 후에 거기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 까지는 들은 기억이 없는데 내가 잘못한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밖을 서성거리며 약 5분쯤 기다리고 있으니 차가 왔다.

 "전화는 왜 안받어?"

 "벨소리가 작은지 못 들었습니다"

 "아 시간이 몇신데... 아무튼 빨리 타"

 그래서 일단 차에 탄 후 벨소리를 최대로 올리고 동시에 진동도 울리게 설정을 바꿔놨다. 평소에는 벨소리도 작게하고 진동도 안 울리게 해놓는 편이다. 약 3분 후에 어제의 그 마감 현장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뭔가 좀 부산하다. 소장님도 뭔가 정신이 없으신지 어제처럼 뭔가 딱 지시사항을 정해주는게 아니라 이거했다가 저거했다가... 나도 주변에서 뭔가 하긴 했는데 내가 정확히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잡다한 것들 들어서 옮기거나 치우면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미장 하시는 분이 시멘트도 옮기고 물도 받아오라고 해서 그분을 좀 거들었다. 시멘트 포대는 너무 무겁다.

 그리고 한 9시쯤이었나 소장님이 빗자루를 하나 사 오셔 가지고는 이걸로 먼지와 쓰레기들을 싹 걷어내고 기타 잡동사니를을 모두 1층으로 내려 놓으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이제 본격적으로 장판이나 타일들을 까는 작업이 이루어지려고 하는것 같았다. 그러면서 시범으로 먼지를 중간으로 모으셨는데 먼지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발생했다. 완전 깨끗하게 할 필요는 없고 다음 작업할 수 있게끔만 하면 된다고 하신 후 자리를 이동 하셨다. 내가 이런 일이 있을줄 알고 1급 방진 마스크를 사놨지.

 각종 쓰레기와 뭣에 쓰는건지 알수없는 잡동사니와 자재들을 일단 방들에서 빼낸 후 쓰레기와 먼지들을 쓸어 나갔다. 하지만 1급 방진 마스크도 모든 먼지를 막아주지는 못하는것 같다. 조금씩 흙먼지맛이 났다. 먼지라고 해서 그냥 일반 가정에서의 먼지가 아니라 이게 다 돌이나 콘크리트등의 흙먼지다. 안개처럼 먼지가 발생하는데 코와 입은 그렇다치고 눈은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청소 후 모습
창문은 옮기는게 아니라서 내비뒀고 옆의 작은 통은 완강기라고 하는 것이다.


 일하다보니 소장님께 전화가 왔다. 어느세 점심이다. 오늘은 쓰레기들 마대 자루에 넣어서 버리고 자재 옮기면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무릎이 많이 아프다. 잠을 못잔탓도 있어서 더 힘든것 같았다. 원래 식사중에 반주 하는건 너무 아재스러운것 같아서 안하려고 했는데 술기운이라도 빌려서 일해보려고 두잔을 마셨다.

 "오늘처럼 추운날에는 좀 마셔야 돼"라고 소장님이 말씀 하셨다. 이 날은 김치찌개가 나왔다. 어째선지 밥이 되게 맛있었던것 같다. 먹고 있는데 소장님께 전화가 와서 그 통화내용을 듣고 있으니 차를 빼달라는 내용인것 같다. 그래서 소장님이 내게 천천히 먹고 나오라고 하셨는데 그냥 나도 같이 급하게 먹고 자리를 떴다.



알콜 연료. 신기해서 찍어 봤다.
말통 뒤로 미장을 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불을 쬐서 빨리 마르게 하려고 이렇게 한듯 싶다.


 잠시 불에 몸을 녹이고 있으니 1층 상가쪽에 있는걸 전부 비우고 치워놓으라고 하셨다. 보니까 별의별게 다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시멘트나 타일들이 있어서 힘들었다. 다 무거운 것들이다. 그러고보니 40kg을 들다가 20kg을 들면 그건 무거운것도 아니다. 그냥 시멘트 포대는 40kg이고 백시멘트는 20kg인데 이게 이렇게 가벼웠나? 참나... 세상은 정말 상대적이구나.

 몸 상태가 별로라서 빨리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꾸준히 해나갔다. 하다보면 언젠가는 끝난다. 그걸 끝내놓고 오전에 하던 청소와 정리 작업을 이어 나갔다. 건물 전체를 다 해야하는거니까 작업 내용이 별 대단한게 없더라도 금방 끝나진 않는다. 아무튼 청소도 끝내 놓으니 다음에는 대걸레로 복도와 계단, 벽 등을 닦아 놓으라고 하셨다.

 6층부터 시작해서 콘크리트 바닥을 제외하고 대리석 타일이 시공 된 곳만 닦아 나갔다. 돌가루가 있던 곳이라 한번에 깨끗이 닦이진 않았다. 조금만 걸레질을 해도 금새 구정물이 된다. 2층씩 마다 물걸레를 빨아가며 청소를 했고 다 끝낸 후에 다시 위로 올라가서 한번 더 닦았다. 이제서야 좀 대리석처럼 보인다. 그런데 날이 춥다보니 닦아놓은 바닥이 얼어버렸다. 미끄러워서 사고 안날까 모르겠다.

 몸 상태가, 특히 오른쪽 무릎이 너무 아파서 하루종일 힘들었다. 무릎만 안 아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것 같다. 어제 시간을 좀 오버해서 일한 것도 있으니 오늘은 내가 먼저 시간에 맞춰 소장님께 갔다. 사인지에 사인을 받고 환복을 한 후 건물을 나왔다. 어제 물티슈를 가방에 넣었다가 얼어버렸었기 때문에 오늘은 뒷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물티슈로 대충 옷을 닦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너무 더러우면 민폐가 될것 같아서 좀 번거로워도 좀 정리를 해야한다.

 무릎이 아파서 빨리 걸을 수도 없고 버스를 탔더니 차가 막힌 탓도 있어서 좀 늦었다. 18시가 가까워지니 사무소에서 칼같이 전화가 온다. 마침 바로 사무소 건물 밑이었기 때문에 다 왔다고 말하고 올라갔다.

 "내일 나오라는 말 없었어요?"

 "네 오늘은 별 말씀 없으시던데요?"

 이렇게 세번째 노가다가 끝이났다. 마찬가지로 소개비 제외하고 114,000원을 받았다. 전에는 일 끝나면 뭐 먹을까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그다지 식욕이 없다. 일단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서 몸 부터 녹여야겠다.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노가다: 노가다라고 힘든 일만 있는건 아닌듯

 2018-01-24 수요일 오전, 오후



이끌림 샤시 - 이미지출처 링크

 이전에 시멘트 옮긴 현장에서 떠나 차로 3분쯤 이동해서 다른 현장으로 도착했다. 내가 보기엔 거의 작업이 끝난 건물처럼 보였는데 아마도 마감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것 같았다. 여기서 지시받은 일은 일단 창틀에 붙어 있는 보호 필름이나 기타 잡다한 것들을 전부 제거하고 곳곳에 보이는 스티로폼 같은걸 잘라내는 일이었다.



폼 단열재 - 이미지 출처 링크


 이 거품을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지금 검색해봤는데 폼 단열재라고 한다. 아마도 위 사진처럼 거품같은걸 쏘면 시간이 지나 굳어서 딱딱해지는 재질인것 같다. 이런게 마감한 벽 사이로 곳곳에 삐져나와 있었다. 노가다 일을 하기 전에는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바닥쪽에 삐져나온 폼을 제거할땐 바닥을 긁게 되므로 커터의 날이 쉽게 닳았다. 이 작업 끝날때까지 칼날을 자르거나 하면서 3개 교체했다. 소장님도 칼이 안들면 교체하면서 작업하라고 하셨다.



개그맨 김병만

배우 박철민


 다른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나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던 분을 '작업 소장'이라 불렀다. 이 분은 겉보기에는 그냥 흔한 인부처럼 보였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작업도 하시고 전화도 걸고 받고 하면서 부지런히 다니셨다. 그런걸 보면 아마도 직책이 높은분인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분을 소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분 이미지는 뭐랄까... 개그맨 김병만씨에 배우 박철민씨를 적당히 믹스한것 같은 인상의 분이셨다. 일이 끝난 지금의 시점에 생각해보니 쓸대없이 사람 스트레스 주지 않는 타입이다. 이런 분만 만난다면 노가다 일도 할만할것 같다.

 노가다라고 하면 게임할때 mmorpg의 노가다는 단순 반복 작업을 말한다. 실재 노가다도 마찬가지다. 그게 어떤 형태이든 작업이 끝날때까지 같은걸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솔직히 보호 필름 떼어 내고 커터칼로 폼 자르는거 중고등학생만 되도 다 할 수 있다. 다만 쉬지않고 계속 하니까 힘든것일뿐. 나는 담배도 피지 않으니 중간중간에 자재 옮기라는 지시 받았을 때를 제외하곤 계속 이 작업을 반복 했다.

 어떤 창문은 내 키보다 높기도 하므로 사다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보호 필름을 제거했다. 그런데 이게 접착력이 높은건지 잘 안 떨어진다. 어떤건 사이사이에 껴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 그런건 커터칼로 잘라가면서 작업 했다. 장갑을 껴서 손 감각이 둔하니까 일이 잘 안되길래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작업했다. 건물 안쪽이라 바람은 안불지만 이날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였다. 손이 너무 시렵다. 그리고 계속 손톱으로 잡고 뜯고 하다보니 엄지, 검지 손톱도 아프다. 그래도 이 정도면 노가다 중에선 정말 쉬운 일이다. 작업소장님이 일일이 감시하면서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

 '이런 일만 받으면 노가다도 할만 하겠네'하며 작업하는데 더럽게 안가는 시간도 결국 흐르기 마련이고 배꼽 시계는 어떤 시계보다 정확하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 무렵 6층짜리 건물의 작업이 끝났고 1층에서 드릴로 콘크리트를 부수고 있던 소장님께 내려가니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 후기가 일 끝나고 바로 쓰는게 아니라 기억을 더듬어서 쓰는거라 이날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소장님이 반주로 소주를 시키시곤 한잔 주셨다.

 "한잔해"

 "제가 술을 잘 못해서 한잔만 하겠습니다"

 "그려"

 한잔을 비우고 밥을 먹고 있는데 소장님이 자작으로 소주 서너잔을 드시더니 말씀 하셨다.

 "처음하는 사람들은 한번에 그렇게 오르려면 힘들어. 올랐갔다 내려갔다 해야지. 그 작업반장 봤지? 그 양반은 한번에 6층까지 올라가. 처음하는 사람은 한층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식으로 해야 할만해."

 "그런걸 곰방이라고 하는거죠?"

 "그렇지. 안해본 일이라서 힘들거여. 보통 사람은 못해."

 그러고보니 새벽에 시멘트 옮기고 받았던 데미지도 어느정도 회복된것 같았다. 소장님 식사 속도 보면서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데 '다 먹으면 먼저 가보라'고 해서 밥을 마저 비우고는 자리를 일어났다. 사실 속으로는 밖이 추우니까 좀 더 있고 싶었는데 먼저 가라니까 어쩔 수 없이 나왔다.

 현장으로 다시 도착하니 다들 밥 먹으러 가서 아무도 없는데 혼자만 움직이는것도 좀 오바다 싶고, 보통 밥 먹고 조금 좀 쉬지 않나 싶어서 불 붙여 놓은 알콜 말통 앞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잠시 후에 소장님이 오셨고 따라 오라길래 따라서 올라갔다.

 다음으로 지시받은 작업은 섀시의 필름이 아니라 방 내부에 있는 필름의 제거였다. 내가 지금 이걸 필름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정확한 명칭이 뭔지는 모른다. 아무튼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먼지가 많이 날리므로 오염되지 말라고 문이나 문틀에 붙어있는 투명 시트지 같은건데 이걸 제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시작점도 없고, 손톱으로 긁는다고 해서 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커터칼로 한쪽을 그은 다음에 살살 들어내고 찢어내야 했는데 이건 섀시에 붙어있는것보다 몇배는 안 떨어졌다. 그런데 제품의 겉면에 주의사항이 써있는데 칼을 쓰지 말란다. 아니 칼을 안쓰면 이걸 무슨 수로 떼어 내라는거여. 그래서 가능하면 칼집 자국이 안나거나 티가 안나는 곳을 그어가며 작업했다.

 부착하고 시간이 오래되면 제거가 힘들어지므로 시공이 완료되면 속히 떼어내라는 문구가 써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건지 뭔지 진짜 더럽게 안 떨어졌다. 그렇게 낑낑대면서 방의 보호 필름들을 떼어냈다. 기본적으로 이 작업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소장님이 이거 옮겨라 저거 옮겨라 하시면 물건을 옮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당시에 폰을 가방에 넣어 놨었는데 가방이 다른 현장에 있었으므로 시간을 몰랐다. 소장님이 오시더니 "시마이 시마이"라고 하시길래 하던걸 중지하고 따라갔다.

 "시간이 좀 지났네. 사인지 줘봐"

 "아 저쪽 현장에 있는데요."

 "그래? 어차피 나도 이동해야 하니까 같이 가자"

 그래서 차를 타고 처음 도착했던 현장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사인지에 사인을 받았다. 돌아갈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므로 물티슈로 먼지 투성이인 옷을 좀 닦으려고 하니까 가방에 넣어놨던 물티슈가 꽁꽁 얼어버렸다. '진짜 오늘 엄청 춥긴 추웠나보구나 어떻게 이렇게 얼어버리냐'하는 생각을 하며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와 물티슈를 샀다. 물티슈로 대충 옷을 닦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런데 무릎이 다시 아프다. 평지나 계단 올라간땐 그나마 나은데 계단 내려갈때 미칠것 같다. 다리가 아프니 빨리 걸을 수도 없어서 천천히 갔더니 사무소에서 안오냐고 전화가 왔다. 사무소에 거의 다 도착하니 거의 18시가 다 되었다. 일을 퇴근 시간 조금 넘어 한 탓도 있고 다리가 아파서 빨리 걷지 못한 탓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16시 30분을 퇴근 시간으로 잡는것 같다.



맘스터치 싸이버거

 이렇게 두번째 노가다가 끝났고 역시 수수료를 제외해서 114,000원을 받았다. 집에 가는 길에 atm에 들렀다가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산 후 맘스터치에서 싸이버거를 포장해왔다. 맛있다는 말만 들었지 처음 먹어봤는데 역시 '싸이버가가 갑'이라는 말을 인정? 응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첫날과 달리 몸상태가 괜찮아서 내일 또 일할 수 있을것 같다.

노가다: 초짜의 두번째 도전 - 곰방 체험

 2018-01-24 수요일 새벽
 식당에서 나와 일단 사람들을 따라갔다. 처음 도착했었던 그 현장으로 가니 식당에서 반장님으로 불렸던 분이 "장갑은 있나?"라며 물어 보셨다.

 "네 여기 있습니다"

 "그거 한겹 가지고 되나. 손 시릴탠데"

 "작업용 장갑도 갖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가방에 넣어뒀던 코팅 장갑을 하나 더 손에 꼈다. 처음 노가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보통 현장에서 지급해주는 코팅 목장갑만으로는 손에 물집이 잡히거나 아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비 들여서 미리 코팅 장갑을 사놨었다. 이 장갑은 이전 현장에서 한번 사용했고 이번이 두번째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전 현장에서 하루 사용한것만으로 벌써 구멍이 났다.

 아무튼 장갑을 끼고 나니 반장님이 "으으 춥다 춥다" 하시면서 무슨 말통에 불을 피우셨다. 나는 그런 물건을 처음 봤으니 그걸 뭐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보아하니 불에 잠깐 몸을 녹이고 일을 시작할것 같아서 준비해 온 군복 바지로 갈아 입었다. 현장에서 하루만 일해도 옷이 걸레가 되기 때문에 걸레짝 되도 상관없는 군복 바지가 만만해서 가져왔다.

 이날 내가 입은 복장은 안쪽으로는 얇은 기능성 발열 내의와 티셔츠,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비닐같은 재질의 바람막이를 입고 또 그 위에 조끼형 패딩을 입었다. 그러니까 상의는 다섯겹, 하의는 두겹인 셈이다. 다 버려도 되는 옷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겹겹이 입어도 오지게 추웠다.

 옷을 갈아 입고 나니 "알콜 일단 3층으로 옮겨놔요"라고 말 하시면서 말통 2개를 양손에 들고 올라가셨다. 그 불피웠던 네모난 통을 '알콜'이라고 부르나 보다. 반장님처럼 나도 양손에 통을 하나씩 들어보니 처음엔 몰랐는데 몇개 옮기다 보니 조금 무겁다.

 당시 몇시인지 시간 확인할 틈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대충 6시 40분쯤에 밥을 먹기 시작했으니 아마 7시 전후였을거다. 해가 안떴는지 어두울 때였다. 현장은 건물 안쪽이라 더 어두웠다. 층층마다 피워둔 불 때문에 주변이 간신히 식별될 정도였는데 온갖 자재와 쓰레기가 발에 치이는 상황이었다. 교육 받을때 현장에는 간이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그런것도 없어서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경을 써서 조심조심 올라가고 내려왔다.


건설현장연료 - 이미지링크 출처

 그 말통을 정확히 뭐라하는지 궁금해서 방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메틸알콜 주성분의 고체 연료라고 한다. 한통당 무게는 13kg쯤 되나보다. 내가 직접 새 물건의 뚜껑을 열어본 적은 없어서 저런 색깔인지는 모르겠으나 저기에 불을 붙이면 까맣게 변하면서 "호록호록호로록" 소리를 내면서 타오른다. 불이 붙으면 불이 크게 올라오며 그 주변은 제법 따듯하게 된다. 몇시간은 불타는것 같았다. 화력 좋고 양이 많은 양초 같은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알콜도 옮기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크기가 내 몸만한 파란 통도 옮기라고 해서 옮겼다. 빈통이라 무겁진 않았다. 그리고 다시 알콜을 옮기고 있는데 아침에 처음 만났었던 분이 나를 보더니 물어본다.

 "뭐하고 있어요"

 "반장님이 알콜 옮기라고 하셔서 위로 올리고 있습니다"

 "아휴 무슨... 그거 내려놓고 따라와요"

 알콜을 내려놓고 따라서 내려가니 무슨 포대들이 잔뜩 쌓여있다.

 "이거 나처럼 이렇게 들고 3층에 10개만 옮겨봐요"

 뭔가 했더니 시멘트 포대인가 보다. 시범 보여준것처럼 등쪽으로 들쳐메고 밑을 손으로 받치고선 계단을 올랐다. 이것 또한 처음엔 몰랐는데 한층만 올라갔더니만 진짜 더럽게 무겁다. 손이 아파 죽을것 같다. 낑낑대면서 일단 하나는 올려놨는데 내려놓고 보니 40kg라고 써있다. '잠깐... 이게 그 곰방이라고 하는 그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개째를 올렸다. 처음 한개 올렸을때 팔에 너무 부담이 되길래 이번엔 몸을 더욱 숙여서 무게를 등쪽으로 쏠리게끔 해봤는데 그래도 역시 팔에 부하가 많이 생겼다.

 모양새만 비슷하게 하고 있지 아무래도 제대로 된 방법으로 옮기고 있는것 같지가 않다. 진짜 더럽게 힘들다. 두개밖에 안 올렸는데 등산이라도 하고 있는것처럼 숨이 차다. 세개째를 올리다가 그만 놓쳐 버렸다. 바닥에서부터 다시 들어 올리려니 엄두가 안나서 잠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단 숨 고르면서 상태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기합넣고 들어올린 후 안아서 옮겼다.

 이제 네개째 옮기려는데 벌써 죽을것 같다. '이걸 열개를 옮기라고? 다섯개도 못할것 같은데' 싶었다. 숨 고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까 그분이 오셔서는 물어봤다.

 "몇개 옮겼어요?"

 "3개요..."

 "3개? 허이구... 그럼 다섯개만 옮겨봐요."

 네개째를 옮기는데 2층 반쯤 올라갔더니 진짜 눈앞이 하얘진다. 이 악물고 올려놨더니만 이제 무릎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하나만 더 옮기면 되는데... 솔직히 못하겠다. 의지만으로 하려 해도 몸이 "야! 너 여기서 더 움직이면 큰일나! 하지마!"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쉬면서 좀 생각해보다가 무리하다가 다치면 그것도 문제고 아까처럼 놓쳐도 문제다. 너무 이른것 같지만 안되겠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것도 못하냐'고 하면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만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몸이 안 따라줘서 못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요. 그거 하려고 온거 아니니까. 지금 이게 급해서 그래. 쉬고 있어 쉬고 있어"

 응? 그거 하려고 온게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쉬면서 이게 무슨 뜻인가 생각해보니 원래 그런 무거운걸 옮기는걸 이쪽 용어로 곰방이라고 하는데 원래 곰방 인부는 하는 사람이 하는거고 이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페이도 쌔다. 나는 잡부로 온것이지 곰방하러 온 사람이 아니니까 정 못하겠으면 쉬고 있으라는 의미인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곰방'은 일본어의 小運搬(こうんぱん)을 고운반이라고 하다가 곰방으로 부르된거라 한다. 보통은 계단을 통해 무거운 자재를 옮기는걸 곰방이라고 하는듯 하다. 참고자료 링크

 쉬고있으니 나에게 작업 지시했던 분이 따라오라고 하시더니 차에 탔다. 차 안은 엄청 지저분하고 각종 물건들로 넘쳐나서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었다. 고작 시멘트 4개를 옮겼고 시간은 8시도 안된것 같은데 벌써 체력이 바닥을 찍고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면서 사람을 제외하곤 40kg을 들어본적이 없는것 같다. 가장 무거웠던게 완전 군장이나 롤 형태로 된 원단이나 포대같은 거였는데 그것도 30kg대였지 40kg는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내 몸무게의 2/3 정도 되네. 어디서 보니까 자기 몸무게의 절반이 넘는건 들지 말라던데...

 누군가는 곰방을 '노가다의 꽃'이라고 한다던데... 꽃은 무슨 꼬츄다 시발. 엉엉.

2018년 1월 24일 수요일

노가다: 일이 없는줄 알았더니?

2018-01-24 수요일 새벽
 어제 뉴스에서 나온바대로 오늘도 오지게 춥다. 아니 어제보다 더 추운것 같다. 그래서 새벽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도 별 기대가 안됐다. '나가봤자 어차피 없을거 같은데 집에 있을까'하며 컴퓨터를 켰다가 이내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끄고 옷을 챙겨입고선 집을 나섰다. 일이 있든 없든 일단 나가봐야 할것 같았다.

 사무소까지는 약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그 정도 거리를 걷다보면 열이 나니까 패딩을 입었으면 덥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 와가는데도 별로 덥지도 않고 넥워머를 잠깐 내렸더니 입김으로 젖은 면이 얼어버렸다.

 오늘도 항상 그랬듯이 잡부 1번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남들보다 일찍와서 이름이라도 맨 위에 올리는 것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소장님이 말을 걸어 주셨다. 평소에는 그렇게 먼저 말 걸어줬던 적이 없었다.

 "오늘은 너무 추워서 아마 일이 없을거 같아요."

 "네에...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맨날 일등으로 오시는데 어떡하나. 젊은 분들을 많이 내보내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눈 후, 돌아서서 TV를 켜고 인부 대기석에 앉아 보는둥 마는둥 하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그런가 사람들도 몇명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열댓명 쯤은 있던거 같은데 오늘은 절반 정도. 그런데 약 40분경에 이름이 호명됐다. 거의 반사적으로 "넵?"하고 일어났는데 '응? 일이 없는거 아니었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으니 사인지를 주면서 여기 적힌 주소지로 일하러 가면 된다고 한다. 정말정말 기대를 하나도 안하고 있어서 내심 당황하고 있는데 '6시 30분까지 가면 된다'는 말에 허둥지둥 사무소를 나왔다.

 목적지까지 버스와 지하철 중에 선택해야 했는데 버스를 타는게 거리상 더 빠를것 같았다. 지하철은 동선이 좀 돌아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혹시라도 버스를 타면 실수라도 할까봐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지하철을 선택했다. 도착하니 6시 15분이었고 주소지까지 10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모양새를 봐선 현장이 여기가 맞는것 같은데 사람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작업반장님께 전화를 걸어보니 왠 아줌마가 받았다.

 "여보세요. @@@건설 맞나요?"

 "뭐라구요!?"

 "@@인력 인부인데요. @@@건설 아닌가요?"

 "아니에욧!!!!"

 신경질적인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겼다. ......전화번호가 틀렸나보다. '사무소로 전화번호가 틀린것 같다'고 전화를 하니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확인해보니 맨 뒷자리 7을 9로 잘못 본거였다. 제대로 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남자분이 받았다.

 "여보세요. @@@건설인가요?"

 "네. 왔어요?"

 "네. 지금 @@병원 근처이고 현장으로 보이는 곳 근처에 있긴한데 어디로 가야할까요?"

 "근처에 뭐가 있어요?"

 "@@편의점 하나 보이네요."

 "엉? 거가 어디야? 아니 병원 옆에 은행 보여요?"

 "은행이요? 잠깐만요. 제가 병원앞으로 가볼게요."

 "병원옆 은행 지나서 우회전 해서 오면 되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일단 가보고 못 찾겠으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근데 가란대로 갔는데 우회전 할 곳이 없다. 왜냐...... 우회전을 하면 횡단보도인데? 내가 뭘 잘못 들은것인가. 아니면 좌회전을 우회전이라 잘못 말하신건가. 짱구를 굴리면서 주변을 배회해보니 근처에 공사현장이라곤 내가 처음에 갔던 그 곳 뿐이다. 내가 아무리 길치라지만 이거는 거기가 맞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처음 갔던 곳으로 되돌아 갔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가라고 하신대로 가봤는데 못찾겠거든요?"

 "아니 그걸 왜 못찾지? 6층짜리 건물! 부직포로 싸인 건물 있잖아요!"

 "네... 여기 벽돌도 있고... 제가 지금 거기 있는거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기다리면 될까요?"

 "네. 거기 있어요."

 그런데... 공사현장으로 보이긴 하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있어봐야지'하곤 근처를 서성거렸다. 한 5분 있으니 어떤 차에서 사람 두명이 나오더니 "인부?"라고 물어보길래 "네"라고 했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그래서 쫄래쫄래 따라갔다. 낌새가 밥을 먹으러 가는것 같았다.

 식당에 들어가니 주인 아줌마가 "하이구 이렇게 추운 날에 일하러 나오셨어?"하시며 인사를 건냈다.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눈 둘 곳 몰라서 멍 때리고 있다가 '물은 셀프'라고 써 있는걸 보고 정수기에서 나 마실 물과 다른 물을 받아 배치를 했다. 평소에는 냉수를 마시는데 오늘은 날이 너무 춥다보니 온수를 섞어 마셔야 할것 같아 그렇게 했다. 수저도 셋팅하려 하다가 수저통이 내 앞에 있지도 않고 너무 오버하는것처럼 보일까 싶어 그건 건드리지 않았다.

 찬거리가 셋팅되니 그제서야 두분이 서로 조금씩 대화를 하시던데 작업상황에 대한 얘기같았다. 나는 아는게 없으니 듣긴 들었으나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처음 시작은 "이렇게 추운날에 무슨 일을 한다고"라며 투정하는 듯한 대화였던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식사 중간쯤에 반장님이라 불리는 분과 다른 분 한분에 더 오셨고 나를 포함하여 총 다섯명의 인원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본인은 혼자 식사할땐 느긋하게 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과 밥 먹을때는 눈치를 봐가며 속도를 맞추곤 한다. 역시나 이 직종 사람들은 밥을 오지게 빨리 먹는다. 나도 밥을 국에 말아서 후르륵 마시듯 먹고는 다른 분들과 함께 일어났다.

 이렇게 기대도 안한 날에 일감을 받아 두번째 노가다 일을 하게 되었다. 다음 후기는 다음 포스트에... 지금 일 끝나고 와서 바로 타이핑 하는거라 힘들어서 더 못 쓰겠다.

노가다: 추워서 일이 없다.

 2018-01-14 화요일
 지난 토요일 이후로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어서 집에서만 지냈다. 당시 후기를 쓰면서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다고는 썼지만 활동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억지로라도 좀 움직이면서 재활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안일했던것 같다. 현재 글 쓰는 화요일 기준으로는 완전히 컨디션을 회복한것 같다. 쪼그려 앉기를 할때 허벅지쪽이 당기는것 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리고 주문했었던 방진 마스크와 무릎보호대가 왔다. 이제 다시 인력 사무소에 나가봐야겠다.



3M 8822 1급 방진 마스크 - 이미지출처 링크


 2018-01-23 화요일
 이제 일주일은 훨씬 넘었으니 후유증은 없지만 무릎은 여전히 아프다. 아무래도 쉽게 나을 성질의 질환이 아닌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인력소 나가려고 한번 강제로 생활리듬을 맞춰놨었는데 몸 추스리는 사이에 다시 엉망이 됐다. 밤에 통 잠에 못들고 아침이 되야 간신히 잠이 온다. 자려고만 누우면 왠 잡념이 그렇게나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잠 못들면 아예 밤을 새버리고 나가자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잠을 하나도 못잤지만 이러다간 정말 아무것도 못할것 같아서 그냥 나갔다. 죽든 살든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집을 나서보니 엄청 춥다. 지난번에 인력소에 갔을때 뉴스를 보니 한파라고 했었던것 같은데 오늘도 그 정도의 추위는 되는듯 싶었다.

 항상 그렇듯 5시 경에 도착했고 일단 잡부 1번에 이름을 올렸다. 저번에는 운이 좋아서 호명 됐었는데 왠지 오늘은 그런 운이 없을듯 싶었다. 뉴스를 보니 오늘은 영하 12도라고 한다. 심지어 내일은 더 추울거라고 하고 이 추위가 일주일 내내 지속될거라 한다. 소장님 전화 통화 내용을 가만히 엿들어보니 인부를 부른 업체측에서 '추운 날씨와 눈 때문에 일정취소'라며 그 내용을 미리 나가있는 인부들에게 전달하는 듯한 내용이 들렸다. 대기하고 있는 인부들도 '이번 일주일 내내 일감이 없겠다'는 등의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나조차도 '오늘은 진짜 글렀구나' 싶은 생각이 빠르게도 들었다. 슬쩍 곁눈질로 인명부를 훔쳐보니 이름 올린 약 30명 정도의 인원중에 나간 사람이 고작 7~8명 밖에 안되는것 같았다. 그래도 너무 빨리 나가는건 좀 그래서 최대한 버티고 있어보다가 마지막 인부들이 나가는 타이밍에 함께 빠져나왔다. 그때가 7시 15분경 이었던것 같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이런 와중에서도 일 나가는 사람은 계속 나가는것 같던데 아무래도 나같은 초짜는 차례가 올것 같지가 않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노가다: 첫날(3) - 후유증

2018-01-11 목요일
 반쯤 정신이 나간채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동료분 뒤를 쫓아가는데 동료분이 그걸 보더니 물어본다. "아니 그렇게나 아파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나도 내가 한심해요. 슬개골 부상이 완벽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일을 하는 바람에 동료분께 민폐를 끼친것 같아서 정말 미안했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내 바로 앞에 자리가 났는대도 몰골이 너무 더러워서 다리가 부러질것 마냥 아픈대도 그냥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집에 택시를 타고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으니 어느새 인력소에 도착했다. 소개비를 제외하고 11만 4천원을 받았다. 그냥 담담했다. 노가다 일 해보기 전에는 많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막상 해보니 많은 것도 아닌것 같다. 이거 분명히 내일은 몸살 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돈으로 별풍선을 쏘면 되겠군


 동료분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이 돈으로 택시를 타려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이 악물고 집까지 걸어서 왔다. 먼지 묻은 옷들을 벗어서 현관에 벗어 놓고 뜨거운 물을 틀고 욕조로 들어갔다. 일할때는 몰랐는데 옷을 벗고보니 여기저기 찰과상들이 나서 물에 닿으니 따끔거린다.

 한시간쯤 욕조에 있다가 나와서 대충 머리를 말리고 치킨을 사러 나왔다. 집에 올때 돈 아낀다고 택시는 안탔지만 왠지 치킨은 먹어야 할것 같았다. 오늘 하루 노력한 나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근데 먹다보니 힘이 들어서 다 못먹겠다. 먹을 힘도 없다는게 이런건가 보다.



기승전치킨


 그리고 10시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피곤한대도 온몸이 아프니까 잠이 안온다. 누워있는데 눈물이 나온다. 슬퍼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그냥 찔끔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이다. 몸이 아프니까 나는건지 뭔지. 그렇게 두시간 정도를 잠 못들고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들었는데 문득 깨보니 흥건하다. 자면서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옷이며 침대며 온통 질척거렸다. 이건 뭐 땀을 아주 지린 수준이다. 몸이 회복되느라고 땀이 그렇게 났나? 시간을 보니 고작 3시밖에 안됐다. 또 씻을 기운은 없고 수건으로 대충 닦고 다시 잤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니까 8시쯤 됐는데 신기하게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물론 근육통은 있지만 몸살도 안났고 기분도 괜찮다. 무릎도 걱정했던것보다 상태가 좋고 어제는 잘 몰랐는데 여러 부위중에 허리쪽 근육이 가장 아프다. 무거운거 든다고 허리에 힘을 많이 줘서 그런듯 싶다. 이 정도면 당장은 힘들어도 며칠 이내에 다시 일하러 갈 수 있을것 같다. 당시 일할때만 해도 '역시 난 노가다 할 체질은 아닌가보다'하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의지가 있으면 몸이 따라와주나 보다.

 다음에 갈때는 갈아 입을 옷 따로 준비하고 물티슈와 마실 물과 마스크를 꼭 챙겨가야 겠다.

노가다: 첫날(2) - 오전, 오후

2018-01-11 목요일
 동료분은 미리 가져온 작업복으로 환복을 하시고 나는 그냥 그 상태로 현장에 비치된 안전모를 착용하고 일을 시작했다. 작업 내용은 아시바 사이에 떨어진 콘크리트 잔해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써놓고보니 잔해 청소라고 해서 별거 아닌것 같지만 실제로는 콘크리트 잔해이므로 거의 돌덩이고 어떤것은 철근이 함께 붙어있기도 했다. 절반 정도는 삽으로 뜰 수 있을만큼 잘게 부숴진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사람 머리통 서너개 합친 정도 크기의 돌덩이도 있었다. 들어보니 큰것은 한 20~30키로 되는것 같다. 아니면 가벼운 것도 계속 들고있다보면 무거워지는 것처럼 힘이 빠져서 무겁게 느껴졌던 것일수도 있다.



아시바 - 이미지 출처 링크
이렇게 건물에 작업용으로 설치한 것을 아시바라고 한다. 참고 링크


 그 후에는 계속 삽질 아니면 돌 나르기의 연속이었다. 으쌰으쌰 힘내서 한참 작업하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것 같았다. '한 11시쯤 됐겠지?' 생각하고 시간을 확인하니 고작 9시 반이다. '이런 썩을' 정말 시간이 더럽게 안간다. '아인슈타인 개새끼... 왜 이렇게 시간은 상대적인거야?'라는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계속 삽질을 했다. 그런데 이 삽질도 잔해의 크기가 크다보니 삽이 잘 안들어간다. 절반 정도는 직접 손으로 옮겨야 했다.



콘크리트 잔해 - 이미지 출처 링크


 11시쯤 되니 온몸이 아프다. 아직 점심 먹으려면 한시간이나 남았다. 힘든것도 힘든거고, 아픈것도 아픈거지만, 분진 때문에 정말 미칠것 같았다. 입에서 돌가루 먼지 맛이 난다. 기초 교육 받으면서 분진이 발생하는 현장에선 마스크를 지급해준다고 들은것 같은데 왜 안주는건지. 다음부턴 마스크를 꼭 구비해서 다녀야겠다.



비산 먼지 - 이미지 출처 링크
먼지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난다.


 내가 많이 힘들어하니 동료분이 '이 정도면 쉬운 일'이라고 한다. 그냥 웃고 말았다. 아무튼 버티다보니 결국 시간은 간다. 생각보다 이른 40분에 작업 반장이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이상하게 배가 고파야하는데 배가 안고팠다. 온몸이 아프니까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특히나 목 근육에 이은 팔 근육쪽이 아프니 숟가락 드는것도 힘이 든다. 어쨌든 먹어야 힘내서 일하니까 꾸역꾸역 이 악물고 먹었다.





 그리고 어디 들아가서 좀 쉬웠으면 좋겠는데 여긴 그런게 없다. 동료분께 물어보니 여기만 그런게 아니고 대부분 이렇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길래 들어가보니 오늘은 너무 추워서 건물 안쪽도 춥긴 마찬가지다. 차라리 바깥에 햇볕 드는 곳에 있는게 훨 낫다 싶었다. 그래서 그 추운날에 밖에서 휴식같지도 않은 휴식을 잠깐 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점심 이후의 작업은 그 전보다 세배는 더 힘들었던것 같다. 오전에 했던 구역은 그래도 사방이 트여서 동선에 방해될게 없었는데 점심부터 시작한 곳은 좁은 데다가 잔해에 철근들이 뒤엉켜 있었다. 수레를 가까이 댈수가 없으니 동선도 늘어나고 정말 죽을맛이었다. 게다가 이미 없는 체력이 바닥을 치다못해 내핵까지 뚫을 기세. 근데 이날 정말 춥긴 추웠던게 얼굴은 땀범벅인데 손끝은 어찌나 시린지 중간중간 장갑을 벗어서 불어가며 일했다.





 헥헥거리고 먼지 마셔가면서 꾸역꾸역 작업을 진행해 가고 있던 무렵 이때가 대략 15시쯤 되었던것 같다. 작업 반장이 오더니 비효율적으로 일한다며 아시바의 반대쪽을 막고 있던 칸막이를 떼어버렸다. 그쪽으로 수레를 대고 잔해를 빼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우리라고 안했을까?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 반대쪽이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매장쪽이었고 칸막이를 떼어버리면 먼지 때문에 민원이 발생할 것이므로 동선이 낭비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렇게 작업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매장 사람이 나와서 난리를 쳤다. 일을 못하게 해서 작업은 중지됐고 작업 반장을 호출하니 작업 반장이 그 사람하고 싸운다. 아니 그냥 칸막이 하고 다시 작업하면 되는거 아닌가. 왜 일을 크게 벌려서 일도 못하고 상황만 나쁘게 만들지? 어이없게 그 꼬라지를 보고 있다가 상황이 진정되니 작업 반장이 구역을 옮겨서 작업하라고 한다.

 옮겨간 구역에서는 건물 외벽에서 작업할 공간만 나오게 잔해를 한쪽으로 치우라는 거였는데 이때쯤엔 내가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이기도 했고 작업반장 뻘짓하는거 보고 얼이 빠진 상태이기도 해서 내가 뭘 했는지 잘 기억도 안난다. 아무튼 이렇게 일 하다가 시간이 되어서 일을 마쳤다. 그래도 딱 한가지 좋은것은 시간이 되면 야근같은거 없이 바로 퇴근이라는 점이다.

 먼지 뒤집어쓰고 머리는 떡진채로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으려니 신세가 참 처량하다. 역시 슬개골이 완벽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일을 하니 증상이 더욱 악화된것 같다. 걸어서 집에 갈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동료분이 환복을하고 함께 작업반장에게 사인지에 사진을 받으려고 갔다. 그런데 이 양아치같은 새끼가 그냥 가란다. 그냥 가라니? 하루종일 개고생을 했는데 사인을 안해주면 난 뭐가되나.

 "그냥 가라고요?"

 "아 얘기 해놨으니 그냥 가면 된다고"

 동료분과 마주보며 어이없어 하다가 인력소에 전화를 하니 그런일 없다며 그쪽에서 직접 작업반장하고 통화해본다고 했다. 멀리서 듣고 있으려니 잘 들리지는 않지만 저 새끼가 개새끼라는건 사실 하나만은 확실히 알것 같았다. 인력소에서는 그냥 오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마지막에 사인만 받았어도 그 양반 스타일이 어떻던간에 기분좋게 퇴근할 수 있었을탠데 덕분에 진짜 기분 완전 잡쳤다. 동료분께 물어보니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참 나... 헬조선 아니랄까봐 진짜 어딜가나 지랄이구나.

노가다: 첫날(1) - 새벽

2018-01-11 목요일
 22시가 되어 잠에 들었다. 그런데 고작 한시간 정도 살짝 선잠에 빠졌다가 누운채로 계속 깨어있었다. 아마 전날에 낮잠을 조금 잔것 때문에 그랬던것 같다. 4시가 되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보니 컨디션이 엉망이라 오늘 하루 더 쉴까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식으로 하다간 영영 시작도 못해볼것 같아서 일단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나가기로 했다. 몸 상태는 많이 나아진것 같다. 계단을 오르내릴때 무릎에서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만 일은 할 수 있을것 같았다.

 도착하니 5시 10분이다. 역시 이 시간에 오면 아무도 없다. 전날과 같이 잡부란 1번에 이름을 올렸다. 5분쯤 지나자 사람이 한명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20분이 되었을 무렵 내 이름이 호명됐다. 당시 사무소 안에 사람이 세네명밖에 없었을 때였는데 이름이 불려져서 깜짝 놀랐다.

 "아무개씨와 아무개씨"

 "네네"

 "교육증 있다고 했죠? 안전화는 가져왔고?"

 "네 지금 신고왔습니다."

 "여기서는 좀 젊은 사람을 보내달라고 하네. 리모델링 하는곳인데 아무개씨랑 같이 가봐요. 7시 반까지고 아직 시간 많으니까 밥 먹은 후에 가보도록 해요."

 처음이라 혼자 파견되면 어리버리할거 같아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일 좀 해본 사람과 같이 가게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일 하러갈 사람의 나이는 모르겠으나 대충 내 또래인듯 싶었다. 오늘 함께 일할 분에게 "저는 집에서 식사하고 왔습니다"고 하니 그러면 자기는 나가서 먹고 오겠다며 그 후 45분까지 사무소에서 쉬었다가 출발하자고 합의를 했다.



한파 - 이미지 출처 링크


 막상 일을 받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됐다.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춥기도 해서 tv를 보며 서성거렸다. 뉴스에서는 체감온도 영하 16도인 강추위의 아침이라며 단단히 채비하라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주변 다른 인부들의 대화 내용을 들으니 '오늘 너무 추워서 일감이 없을것 같다'며 '찜질방에나 가야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오늘 일감을 받은게 운이 좋았다'는 점과 '인명부에 1번으로 이름을 올리려고 애썼던게 나름 이렇게 성과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생활 할때는 아침에 그렇게 출근하기가 싫었는데 이렇게 인력소에 나와서는 '오늘은 일 좀 받았으면' 하고 생각이 든다는게 정말 참 아이러니 하다.

 오늘 일하게 될 현장까지는 지하철 약 10 정거장의 거리였고 도보이동까지 고려하면 대충 50분 정도가 소요될것 같았다. 6시 20분 정도가 되고 함께 일할 분이 사무소로 돌아와서 말을 걸어봤다.

 "몇분 쯤에 출발한다고 했었죠?"

 "45분이요"

 "헤맬지도 모르니 조금 일찍 출발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런것까지 계산해서 정한 시간인데요."

 "아 그렇군요. 제가 거리감각이 없어서..."

 실제로 나는 공감각이 매우 떨어져서 길을 잘 못찾고 자주 헤매는 편이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는 이 정도 거리에 처음 가는 곳이면 한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그 분은 45분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한것 같았다. 나는 초짜이니 그분 판단을 따르는게 맞다고 생각됐지만 조금 조바심이 나서 "그러면 5분만 빨리 출발하면 어떨까요?"하고 말하니 그러자고 한다. 시간이 되어 사무소를 나서니 뉴스에 나온대로 오늘 아침은 정말 오질나게 추웠다.

 "제가 인력소 나온지는 3일째인데 두번 데마나고 일은 오늘 처음 하는거거든요. 많이 부족할탠데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일한지 얼마 안됐어요. 근데 오늘 많이 추운데 너무 얇게 입으신거 아닌가요?"

 "제가 갖고 있는 버려도 되는 옷중에선 가장 따뜻한게 이거라서요. 또 일하다보면 더울것도 같고..."

 "하긴 그래요. 아무리 추워도 일하면 땀 나죠."

 이런식으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현장까지 이동했다. 지하철로 이동을 했고 도착하니 약 7시 10분~15분 쯤 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주소지까지 이동했지만 어디가 현장인지 통 알수가 없었다. 함께 일하는 분이 전화를 해보니 '이발소 2층으로 오라'고 했다는데 근처에 보이는 이발소가 한둘이어야지? 다시 전화를 해보니 현장 사장님이 너무 말투가 퉁명스럽고 단답형이라며 보아하니 오늘 일이 힘들것 같다고 한다. 보통 일 자체가 힘든것보다 사람이 쪼아대면 힘들어지게 된다나. 아무튼 조금 헤매이다 딱 30분에 겨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5분 일찍 출발하자고 얘기한게 옳은 판단이 됐다.

노가다: 또 허탕

2018-01-08 월요일
 원래 신년 2일부터 일하려고 했었는데 예상치못한 무릎 부상 때문에 일주일을 쉬었다. 하긴 그 전에 반년을 놀았는데 며칠 더 못놀건 없다. 그저 생각했던대로 일이 안되니 좀 짜증이 날뿐.

 어제까지 매일 절뚝거리며 나름대로 재활 운동이라고 걷기를 했는데 오늘은 좀 컨디션이 괜찮은것 같다. 이제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된듯 싶다. 아프다고 마냥 놀수는 없는 상황이니까 조금 아픈 정도는 무시해야 겠다는 생각에 좀 무리해서 집을 나섰다.

 집과 인력소까지는 약 30~40분 거리인데 약 20분 정도를 걸으니까 무릎에서 신호가 온다. '괜찮아 조금 아픈것 정도는 참을 수 있어'하고 인력소까지 갔다. 인력소는 5층 건물이고 사무소는 5층에 있는데 2층까지 계단을 올라가니 "끄악"하고 입에서 비명이 나온다.

 '아... 오기는 왔는데... 이래서 어떻게 일을 하냐...' 싶어서 얼굴조차 못 비추고 그대로 되돌아 내려왔다. 계단을 올라갈때보다 내려올때 더 아프다.

 '하... 시발'

 내려오니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자괴감에 나 자신에게 뱉은 욕설이다. 아직 계단을 오르내릴 정도는 아닌가 보다. 그렇게 절뚝거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2018-01-10 수요일
 그래도 하루하루 지나면 어제보다 몸 상태가 나아짐을 느낄 수가 있다. 오늘은 계단을 올라도 될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력소에 가면 인부들의 이름을 적는 명부가 있다. 기공/목수와 잡부로 나뉘는데 한마디로 왼쪽에는 일을 좀 해본 사람만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은 사무소에 도착한 순서대로 적어 나가는데 그 전날에는 약 10~15번대에 이름을 올렸다. '너무 늦게 와서 일을 못 받나?'라는 생각에 오늘은 작정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예전에 몸이 정상이었을땐 빠른 걸음으로 25분이면 도착하던 곳을 다리가 아프니까 10분이 더 걸린다. 도착하니 5시 5분 경이었다. 그런데 사무소의 간판이 꺼져있다. '뭐지? 설마 여기 문 닫았나?' 생각하다가 일단 올라가보자라는 생각에 올라가니 사무소 사람 한명밖에 없다. 아마도 다섯시에 문을 여는것 같다. 그 말인 즉슨 오늘은 내가 1번이라는 뜻.

 "안녕하세요"하고 들어가니 상당히 뻘쭘하다. 아직 업무 준비도 안된 상태이다. 말 그대로 방금 문만 연 상태이다. 넓은 공간에 딸랑 두명만 있는데 내가 먼저 말 걸거나 할 짬도 아닌거 같아서 그냥 뻘쭘하게 있다가 커피 한잔 뽑아 마시고 자리에 앉았다.

 직원분이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난로에 불을 붙이고 나니 15분쯤 되었는데 여전히 나 혼자였다. 그렇게 인명부 1번에 이름을 올렸다.

 25분쯤 되니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딱 봐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보였는데 보통 두세명씩 다니는듯 싶다. 팀을 이뤄서 같이 다니나 보다. 이름을 올릴때도 일일이 이름을 쓰는게 아니라 한명이 세명 이름을 다 쓰는것 같더라. 역시나 원래 일 하던 사람들 위주로 먼저 나가기 시작했다. 6시 30분쯤 되었을때 오늘도 데마인가 싶었는데 이름이 호명됐다.

 "아무개씨?"

 "네네"

 나는 맨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혹시나 이름 부르면 못 들을까봐 일부러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전에 일 해보셨다고 했죠?"

 "아 아니요. 등록은 지난 화요일에 했는데... 처음 입니다."

 "음... 이건 처음은 힘들탠데"

 옆에 있던 다른 직원분이 말했다.

 "이건 누구씨 줘야겠네"

 그 후로 7시 50분까지 내 이름은 다시 불리지 않았다. 직원은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서 단 두명만이 사무소에 남아 있었다.

 "저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내일 또 올게요."

 "그래요 내일 다시 와요"

 이렇게 두번째 데마가 났다. 역시 기분이 좀 그렇다. 몸 컨디션은 어느정도 회복한거 같은데 의욕내서 나온만큼 내일은 일을 받았으면 좋겠다. 당분간은 매일 5시에 와서 계속 1번에 이름을 올려볼 생각이다. 이렇게해서 일주일 내내 데마나면 그때가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노가다: 일 해보기도 전에 무릎 부상

2018-01-02 화요일
 벼룩시장 검색을 해봤다. 벼룩시장은 지역을 특정해서 검색해도 검색결과가 엉뚱하게 나오고 뭔가 좀 이상하다. 아무튼 인력소 다 거기서 거기라길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는게 좋다고 하여 사무소 소재지가 파악되는 곳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선택한 인력 사무소는 걸어서 약 30~40분 정도의 거리로 사실 그리 가깝진 않다.

 새벽 4시쯤에 일어나서 씻은 후 간단히 먹고 나가니 약 5시 45분쯤에 도착했다. 나름대로 긴장과 기대를 하고 들아가서 주뼛거리면서 일하러 왔다고 하니까 기초 교육 이수증하고 안전화가 있냐고 물어본다. 있다고 했더니 신분증과 이수증을 스캔하고 뭔가 등록 작업을 하는것 같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열댓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최소 40대 이상에서 60대까지 되어보였다. 30대로 보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한두명 정도였다.

 미리 검색을 해서 대충 '겨울철에는 일감이 없고, 경력자 우선으로 일을 주기 때문에 헛탕칠 수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어쩜 눈길 한번 안주더라. 나도 눈치가 있으니 7시쯤 되었을때 이쪽 용어로 '데마찌'라는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냥 8시까지 있어보기로 했다. 스마트폰 깨작거리려니 괜히 인상만 나빠질것 같아서 꺼내지도 않고 있었고 딱히 할것도 없어서 몇번이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ytn 뉴스를 멍하게 바라보는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그때까지 나를 포함하여 4명 정도의 사람이 남아있었던것 같다.

 8시가되서 소장?(호칭을 모름)으로 보이는 분에게 "이때까지 일 못 받으면 없는거죠?"하고 물어보니 새해들어 첫날이라 일이 없는거라고 한다.

 "여기 1번에 이름 올리려면 몇시쯤 오면 될까요?"

 물어봤는데 들은건지 못들은건지 대답이 없다. 잠시 후 "오늘 몇시에 왔어요?"하고 물어보길래 다섯시 반쯤 온것같다고 하니까 내일도 같은 시간이 와보라고 한다. 그래서 그냥 꾸벅 인사를 하고 나오니 뭔가 기분이 꿉꿉했다. 아마도 기대를 하고 나가서 그랬던것 같다.

 '허전한 마음에 체력 단련도 할겸 등산이나 하고 들어가자' 생각해서 등산을 갔다. 그런데 산 중턱쯤 올라가니 이상하게 무릎이 엄청 아프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등산을 중지하고 내려오는데 너무 아파서 고생고생하며 내려왔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무릎의 슬개골이라는 부분이 아픈것 같다. 슬개골 연골연화증의 증상이 딱 들어맞았다.

 아마도 등산 때문에 갑자기 무릎이 아프게 된것 같지는 않고 최근에 스쿼트를 하루에 50개씩 하다가 갑자기 100개로 늘린게 무리가 된것 같다. 또 바르지 않은 자세도 문제였던것 같다. 아무튼 많이 아프니까 이 날은 아무것도 안하고 쉬기로 했다.



슬개골 연골연화증 - 이미지 출처 링크
잘못된 자세로 스쿼트를 할때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2018-01-03 수요일
 밤새 무릎이 아파서 제대로 잠을 못잤다. 그래도 나가야지 생각해서 어제와 같은 시간에 씻고, 간단히 식사 후 나갔는데 도저히 걷지를 못하겠다. 새해 들어 야심하게 도전한 첫번째 일이 이렇게 망하나 싶어서 그 깜깜한 새벽의 횡단보도 앞에서 헛웃음만 나왔다.

 전화기를 꺼내 인력소 소장분께 전화를 하려다가 업무에 바쁜 모습이 생각나서 '무릎 부상이 생겨서 일을 못할것 같고 회복되면 다시 방문하겠다'고 문자를 보내니 '네'라고 하는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2018-01-04 목요일
 그래도 어제처럼 극심하게 아프지는 않다. 어찌어찌 걸을 수는 있을것 같길래 어제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아... 나 병신 다됐네'하고 생각하면서 절뚝거리며 사무소까지 갔지만 도저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그냥 얼굴도장만 찍어야겠다고는 생각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인부들은 멍하니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자기들끼리 잡다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첫날엔 잘 몰랐는데 억양에서 조선족으로 보이는 사람의 비율이 꽤 높다는걸 알았다. 역시 중국에서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목소리가 크다. 반면에 인력소 사람들은 여기저기 전화하고, 받고 바쁜듯한 모습이다.

 원래 들아가서 인명부?(정확한 명칭을 모름)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오늘은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냥 인사만 하려고 앞에 있었다. 한 2~3분쯤 있었을까. 왜 앞에 멀뚱이 서있냐는 듯 쳐다본다.

 "저 화요일에 등록했던 신입인데요. 제가 무릎을 다쳐서 일을 못할거 같네요. 다 나으면 다시 오겠습니다."

 "아 그래요 이름이 뭔데요"

 "아무개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이름을 물어본 이유가 인명부에 이름을 지워야 하니 확인차 물어본것 같다. 이름을 써놓고 그냥 가버리면 있지도 않은 사람을 호명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면 다 나으면 다시 오세요"

 "네"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안 그래도 최근 많이 우울했지만 집으로 오는데 유난히 기분이 더 꿀꿀하다. 다리까지 아프니 짜증도 난다.

노가다: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을 발급받다.

2017-12-19 화요일
 건설 현장, 흔히 말하는 노가다 일을 하려면 일단 안전화가 있어야 하고, 두번째로 최근에 생긴건데 기초 안전 보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전날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오후반으로 교육을 받으러 갔다.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


 이렇게 생긴 카드 형태의 물건이다. 본인 것은 아니고 검색을 해서 나온 이미지를 붙인것 뿐이다.

 시간 내에 도착하니 안내 하시는 분이 신분증을 달라고 한 후 컴퓨터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보아하니 컴퓨터에 연결된 캠으로 사진을 찍는것 같았다. 찍고나서 교육비로 4만원을 지급하니 영수증을 준다. 교육장 안으로 들어가니 약 30명 정도의 인원이 보였다. 대충 나이대는 평균 40~50대 정도인듯 싶고 간간히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특이하게 아줌마 한분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예비군 동미참 훈련때의 느낌이었다. 다들 멀찌감치 뒤에 앉아 있길래 속으로 '교육 받으러 온거지 예비군 훈련 온것도 아닌데 왜 다 이렇게 뒤에 몰려있지' 생각하며 난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하시는 분도 왜 다 뒤에 있냐고 앞으로 앉으라고 한소리 하더라.

 자리에 앉았을때 컴퓨터와 연결된 프로젝트에 '개그콘서트'로 보이는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그런데 약 5분이 지날 무렵까지 나오길래 '대체 교육은 언제 시작하지' 생각이 들 무렵 강사(?)분이 옆쪽으로 걸어 나오더니 영상을 끄고 교육이 시작됐다.



교육장 이미지 출처 링크
대충 이런 분위기. 위 사진은 보건 교육 시간인듯.


 교육은 총 4시간에 걸쳐 진행되며 50분 교육, 10분 휴식을 한다. 그리고 매교시마다 교육을 받았다고 자필 서명을 해야한다. 1교시의 교육 내용은 나누어준 책자를 말로 읊어주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히 기억나는 내용은 없다. 사고 사례를 몇가지 알려주며 현장에서는 방심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강의가 시작되어 시간이 좀 지나고나니 집중하지 않고 산만한 분위기가 약간 생겼는데 이때쯤 강사분이 하는 말이 교육장 안에는 cctv가 여러대 설치되어 있고 교육받는 과정을 상위 기관에서 모니터링 한다고 한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졸거나 몰래 딴짓을 하면 간혹 교육 이수 자격이 박탈되는 경우도 있으니 잘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교육내내 참가자에게 내용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차 질문을 하기도 한다.

 2교시부터는 강사가 바뀌었는데 이분은 조금 스타일이 달라서 책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실제 자신이 겪은 예를 들어가며 강의를 했다. 역시 결국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분이 했던 말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게 건설 업종에서 매일 매일 한명 이상은 꼭 죽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최근 11월, 12월에 각지에서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는데 대형 크레인 사고는 나도 뉴스를 봐서 알고 있는 사고였다. 한번 사고가 나면 이런식으로 몰아서 난다나. 또 수직 철근에 꼬챙이처럼 찔려 죽는일 종종 생긴다며 그거 조심하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사고 사례로 cctv에 찍힌 실제 영상을 몇가지 보여주던데 후진하던 트럭에 사람이 깔려죽는게 제일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들었던 생각은 사고 당하던 사람들도 조심하지 않으려고 해서 당하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아무리 FM으로 하려고해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걸 무시하는 기류이면 나만 혼자 이상한 취급 받는게 이 나라의 현실 아닌가. 비단 건설현장뿐만이 아니라 FM으로 하려하면 덜 떨어지거나 별난놈 취급 받으니 그래서 헬조선 아닌가. 그래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게 아니라 일하다 죽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는 세상이 되야 할탠데...

 4교시는 보건 교육이라고 여강사분으로 바뀌었고 내용은 일하면서 겪을 수 있는 질병이나 위험 물품 취급에 따른 장비 사용에 대한 설명등이었고 마지막에는 구급법에 대한 설명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쉬는 시간에 주변을 둘러보니 뒤에 먹으라고 간식도 준비되어 있더라. 그래서 4만원이 아까워서 매 시간마다 과자도 줏어먹고, 사탕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했는데 눈치보여서 하나씩만 먹었다. 그런데 이건 교육장마다 다를태니 다른곳엔 없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4시간 교육을 받으면 기초 안전 보건 교육은 끝이 나고 교육장을 나오면 바로 이수증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캠으로 찍은거라 그런지 사진이 허옇게 나오더라. 이제 안전화를 산 후 인력 사무소를 방문하면 된다.

노가다: 준비중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최근 약 6개월간 깊은 우울감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흘려 보냈다. 한마디로 아무 생각없이 그냥 백수로 살았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 등골을 빼먹는것도 아니고 독립해서 내가 번돈으로 내 살 깎아 먹으며 내 집에서 노는거니 남한테 꿀릴것은 없다. 다만 내 스스로 자괴감이 들뿐.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이 비루한 삶을 끝 맺으려고도 해봤지만 결국 가슴 한켠의 그 정체 모를 작은 미련으로 인해 벌버둥이라도 쳐보고자 어쩌면 마지막 선택이 될지도 모를 노가다라는 세상에 발을 내딛기로 했다.

 그리고 어디서 들은 얘기지만 항우울제가 우울하지 않게 해준다기 보단 그냥 잡생각이 나지 않게 멍한 상태로 만들어주는 거라고 하더라. 그런점에서 생각해보니 잡 생각이 들지 않게끔 외부에서 햇빛 보면서 몸을 막 굴리는게 우울증에 도움이 될거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이전까지 해왔던 일들이 모두 실내에서 출근하는 시간 제외하면 퇴근까지 햇빛 한번 못보고 살던 날들의 연속이라 이제는 외부에서 활동하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건설 노무는 하루 평균 꼬박꼬박 2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고위험 직종이고 물론 그만큼 사상 사고도 많다. 지난 12월에만 크레인 사고가 몇차례나 났고, 신문과 뉴스에 건설업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현황을 알고 있었기에 힘든 것은 차치하고 절대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업종이었다. 하지만 현재 나의 상태는 내가 아마 여성이었다면 몸 파는 일을 선택했을지도 모를만큼 정말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벼랑 끝 심정으로 뭔가 해보기로 했다.



안전화(네파)


 이 직종에 발을 담그려면 일단 준비해야할 것이 있는데 하나는 안전화이고, 또 하나는 기초보건안전교육 이수증이다. 건설업 종사자는 현장에서 근무하기 전에 법적으로 모두 기본 안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매번 각각 현장마다 교육을 해야하는 비효율을 없애고자 비교적 최근에 생긴 제도라고 한다. 때문에 교육 이수증 발급에 4만원, 안전화 구입에 약 5만원 정도와 기타 물품 구입비를 고려하면 약 10만원 정도의 초기 투자비가 있어야 일을 시작할 수가 있다.

 지난 12월부터 한번 해보고자 마음을 먹었고 급한대로 나름 기초 체력을 올리고자 운동을 시작했다. 틈틈히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했고 등산하러 갈때면 곳곳에 있는 운동기구로 짬짬히 운동을 했다. 그렇다해도 고작 한달 정도의 기간에 저질체력이 개선될리가 없다. 다만 현장에 나갔을때 맞게될 임팩트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월 2일에 인력 사무소에 등록을 했고 원래 오늘부터 일을 했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무릎 부상이 있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내일 4일 새벽에 나갈탠데 나간다고 해도 일을 받으리란 보장은 없다. 원래 이 바닥은 경력자 위주로 일을 먼저 보내기 때문에 초보자는 일을 못할수도 있다고 한다. 더군다가 겨울에는 일감이 더 없다고 한다. 아무튼 이제 몇시간 안 남았는데 일을 받으면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부디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하루에 두명 사망자가 나오는 확률이라는건 로또 1등 당첨 확률에 약 두배 정도 되는 확률과도 같다는 말이 된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지만 일을 하는데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어야 하다니... 그렇다고 위험수당을 따로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참 정말 헬조선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