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6일 금요일

노가다: 초짜의 두번째 도전 - 곰방 체험

 2018-01-24 수요일 새벽
 식당에서 나와 일단 사람들을 따라갔다. 처음 도착했었던 그 현장으로 가니 식당에서 반장님으로 불렸던 분이 "장갑은 있나?"라며 물어 보셨다.

 "네 여기 있습니다"

 "그거 한겹 가지고 되나. 손 시릴탠데"

 "작업용 장갑도 갖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가방에 넣어뒀던 코팅 장갑을 하나 더 손에 꼈다. 처음 노가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보통 현장에서 지급해주는 코팅 목장갑만으로는 손에 물집이 잡히거나 아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비 들여서 미리 코팅 장갑을 사놨었다. 이 장갑은 이전 현장에서 한번 사용했고 이번이 두번째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전 현장에서 하루 사용한것만으로 벌써 구멍이 났다.

 아무튼 장갑을 끼고 나니 반장님이 "으으 춥다 춥다" 하시면서 무슨 말통에 불을 피우셨다. 나는 그런 물건을 처음 봤으니 그걸 뭐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보아하니 불에 잠깐 몸을 녹이고 일을 시작할것 같아서 준비해 온 군복 바지로 갈아 입었다. 현장에서 하루만 일해도 옷이 걸레가 되기 때문에 걸레짝 되도 상관없는 군복 바지가 만만해서 가져왔다.

 이날 내가 입은 복장은 안쪽으로는 얇은 기능성 발열 내의와 티셔츠,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비닐같은 재질의 바람막이를 입고 또 그 위에 조끼형 패딩을 입었다. 그러니까 상의는 다섯겹, 하의는 두겹인 셈이다. 다 버려도 되는 옷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겹겹이 입어도 오지게 추웠다.

 옷을 갈아 입고 나니 "알콜 일단 3층으로 옮겨놔요"라고 말 하시면서 말통 2개를 양손에 들고 올라가셨다. 그 불피웠던 네모난 통을 '알콜'이라고 부르나 보다. 반장님처럼 나도 양손에 통을 하나씩 들어보니 처음엔 몰랐는데 몇개 옮기다 보니 조금 무겁다.

 당시 몇시인지 시간 확인할 틈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대충 6시 40분쯤에 밥을 먹기 시작했으니 아마 7시 전후였을거다. 해가 안떴는지 어두울 때였다. 현장은 건물 안쪽이라 더 어두웠다. 층층마다 피워둔 불 때문에 주변이 간신히 식별될 정도였는데 온갖 자재와 쓰레기가 발에 치이는 상황이었다. 교육 받을때 현장에는 간이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그런것도 없어서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경을 써서 조심조심 올라가고 내려왔다.


건설현장연료 - 이미지링크 출처

 그 말통을 정확히 뭐라하는지 궁금해서 방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메틸알콜 주성분의 고체 연료라고 한다. 한통당 무게는 13kg쯤 되나보다. 내가 직접 새 물건의 뚜껑을 열어본 적은 없어서 저런 색깔인지는 모르겠으나 저기에 불을 붙이면 까맣게 변하면서 "호록호록호로록" 소리를 내면서 타오른다. 불이 붙으면 불이 크게 올라오며 그 주변은 제법 따듯하게 된다. 몇시간은 불타는것 같았다. 화력 좋고 양이 많은 양초 같은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알콜도 옮기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크기가 내 몸만한 파란 통도 옮기라고 해서 옮겼다. 빈통이라 무겁진 않았다. 그리고 다시 알콜을 옮기고 있는데 아침에 처음 만났었던 분이 나를 보더니 물어본다.

 "뭐하고 있어요"

 "반장님이 알콜 옮기라고 하셔서 위로 올리고 있습니다"

 "아휴 무슨... 그거 내려놓고 따라와요"

 알콜을 내려놓고 따라서 내려가니 무슨 포대들이 잔뜩 쌓여있다.

 "이거 나처럼 이렇게 들고 3층에 10개만 옮겨봐요"

 뭔가 했더니 시멘트 포대인가 보다. 시범 보여준것처럼 등쪽으로 들쳐메고 밑을 손으로 받치고선 계단을 올랐다. 이것 또한 처음엔 몰랐는데 한층만 올라갔더니만 진짜 더럽게 무겁다. 손이 아파 죽을것 같다. 낑낑대면서 일단 하나는 올려놨는데 내려놓고 보니 40kg라고 써있다. '잠깐... 이게 그 곰방이라고 하는 그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개째를 올렸다. 처음 한개 올렸을때 팔에 너무 부담이 되길래 이번엔 몸을 더욱 숙여서 무게를 등쪽으로 쏠리게끔 해봤는데 그래도 역시 팔에 부하가 많이 생겼다.

 모양새만 비슷하게 하고 있지 아무래도 제대로 된 방법으로 옮기고 있는것 같지가 않다. 진짜 더럽게 힘들다. 두개밖에 안 올렸는데 등산이라도 하고 있는것처럼 숨이 차다. 세개째를 올리다가 그만 놓쳐 버렸다. 바닥에서부터 다시 들어 올리려니 엄두가 안나서 잠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단 숨 고르면서 상태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기합넣고 들어올린 후 안아서 옮겼다.

 이제 네개째 옮기려는데 벌써 죽을것 같다. '이걸 열개를 옮기라고? 다섯개도 못할것 같은데' 싶었다. 숨 고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까 그분이 오셔서는 물어봤다.

 "몇개 옮겼어요?"

 "3개요..."

 "3개? 허이구... 그럼 다섯개만 옮겨봐요."

 네개째를 옮기는데 2층 반쯤 올라갔더니 진짜 눈앞이 하얘진다. 이 악물고 올려놨더니만 이제 무릎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하나만 더 옮기면 되는데... 솔직히 못하겠다. 의지만으로 하려 해도 몸이 "야! 너 여기서 더 움직이면 큰일나! 하지마!"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쉬면서 좀 생각해보다가 무리하다가 다치면 그것도 문제고 아까처럼 놓쳐도 문제다. 너무 이른것 같지만 안되겠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것도 못하냐'고 하면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만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몸이 안 따라줘서 못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요. 그거 하려고 온거 아니니까. 지금 이게 급해서 그래. 쉬고 있어 쉬고 있어"

 응? 그거 하려고 온게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쉬면서 이게 무슨 뜻인가 생각해보니 원래 그런 무거운걸 옮기는걸 이쪽 용어로 곰방이라고 하는데 원래 곰방 인부는 하는 사람이 하는거고 이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페이도 쌔다. 나는 잡부로 온것이지 곰방하러 온 사람이 아니니까 정 못하겠으면 쉬고 있으라는 의미인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곰방'은 일본어의 小運搬(こうんぱん)을 고운반이라고 하다가 곰방으로 부르된거라 한다. 보통은 계단을 통해 무거운 자재를 옮기는걸 곰방이라고 하는듯 하다. 참고자료 링크

 쉬고있으니 나에게 작업 지시했던 분이 따라오라고 하시더니 차에 탔다. 차 안은 엄청 지저분하고 각종 물건들로 넘쳐나서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었다. 고작 시멘트 4개를 옮겼고 시간은 8시도 안된것 같은데 벌써 체력이 바닥을 찍고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면서 사람을 제외하곤 40kg을 들어본적이 없는것 같다. 가장 무거웠던게 완전 군장이나 롤 형태로 된 원단이나 포대같은 거였는데 그것도 30kg대였지 40kg는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내 몸무게의 2/3 정도 되네. 어디서 보니까 자기 몸무게의 절반이 넘는건 들지 말라던데...

 누군가는 곰방을 '노가다의 꽃'이라고 한다던데... 꽃은 무슨 꼬츄다 시발. 엉엉.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