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4일 수요일

노가다: 일이 없는줄 알았더니?

2018-01-24 수요일 새벽
 어제 뉴스에서 나온바대로 오늘도 오지게 춥다. 아니 어제보다 더 추운것 같다. 그래서 새벽에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도 별 기대가 안됐다. '나가봤자 어차피 없을거 같은데 집에 있을까'하며 컴퓨터를 켰다가 이내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끄고 옷을 챙겨입고선 집을 나섰다. 일이 있든 없든 일단 나가봐야 할것 같았다.

 사무소까지는 약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그 정도 거리를 걷다보면 열이 나니까 패딩을 입었으면 덥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 와가는데도 별로 덥지도 않고 넥워머를 잠깐 내렸더니 입김으로 젖은 면이 얼어버렸다.

 오늘도 항상 그랬듯이 잡부 1번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남들보다 일찍와서 이름이라도 맨 위에 올리는 것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리 소장님이 말을 걸어 주셨다. 평소에는 그렇게 먼저 말 걸어줬던 적이 없었다.

 "오늘은 너무 추워서 아마 일이 없을거 같아요."

 "네에...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맨날 일등으로 오시는데 어떡하나. 젊은 분들을 많이 내보내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눈 후, 돌아서서 TV를 켜고 인부 대기석에 앉아 보는둥 마는둥 하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그런가 사람들도 몇명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열댓명 쯤은 있던거 같은데 오늘은 절반 정도. 그런데 약 40분경에 이름이 호명됐다. 거의 반사적으로 "넵?"하고 일어났는데 '응? 일이 없는거 아니었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으니 사인지를 주면서 여기 적힌 주소지로 일하러 가면 된다고 한다. 정말정말 기대를 하나도 안하고 있어서 내심 당황하고 있는데 '6시 30분까지 가면 된다'는 말에 허둥지둥 사무소를 나왔다.

 목적지까지 버스와 지하철 중에 선택해야 했는데 버스를 타는게 거리상 더 빠를것 같았다. 지하철은 동선이 좀 돌아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혹시라도 버스를 타면 실수라도 할까봐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지하철을 선택했다. 도착하니 6시 15분이었고 주소지까지 10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모양새를 봐선 현장이 여기가 맞는것 같은데 사람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작업반장님께 전화를 걸어보니 왠 아줌마가 받았다.

 "여보세요. @@@건설 맞나요?"

 "뭐라구요!?"

 "@@인력 인부인데요. @@@건설 아닌가요?"

 "아니에욧!!!!"

 신경질적인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겼다. ......전화번호가 틀렸나보다. '사무소로 전화번호가 틀린것 같다'고 전화를 하니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확인해보니 맨 뒷자리 7을 9로 잘못 본거였다. 제대로 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남자분이 받았다.

 "여보세요. @@@건설인가요?"

 "네. 왔어요?"

 "네. 지금 @@병원 근처이고 현장으로 보이는 곳 근처에 있긴한데 어디로 가야할까요?"

 "근처에 뭐가 있어요?"

 "@@편의점 하나 보이네요."

 "엉? 거가 어디야? 아니 병원 옆에 은행 보여요?"

 "은행이요? 잠깐만요. 제가 병원앞으로 가볼게요."

 "병원옆 은행 지나서 우회전 해서 오면 되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일단 가보고 못 찾겠으면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근데 가란대로 갔는데 우회전 할 곳이 없다. 왜냐...... 우회전을 하면 횡단보도인데? 내가 뭘 잘못 들은것인가. 아니면 좌회전을 우회전이라 잘못 말하신건가. 짱구를 굴리면서 주변을 배회해보니 근처에 공사현장이라곤 내가 처음에 갔던 그 곳 뿐이다. 내가 아무리 길치라지만 이거는 거기가 맞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처음 갔던 곳으로 되돌아 갔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가라고 하신대로 가봤는데 못찾겠거든요?"

 "아니 그걸 왜 못찾지? 6층짜리 건물! 부직포로 싸인 건물 있잖아요!"

 "네... 여기 벽돌도 있고... 제가 지금 거기 있는거 같은데요. 그럼 여기서 기다리면 될까요?"

 "네. 거기 있어요."

 그런데... 공사현장으로 보이긴 하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있어봐야지'하곤 근처를 서성거렸다. 한 5분 있으니 어떤 차에서 사람 두명이 나오더니 "인부?"라고 물어보길래 "네"라고 했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그래서 쫄래쫄래 따라갔다. 낌새가 밥을 먹으러 가는것 같았다.

 식당에 들어가니 주인 아줌마가 "하이구 이렇게 추운 날에 일하러 나오셨어?"하시며 인사를 건냈다.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눈 둘 곳 몰라서 멍 때리고 있다가 '물은 셀프'라고 써 있는걸 보고 정수기에서 나 마실 물과 다른 물을 받아 배치를 했다. 평소에는 냉수를 마시는데 오늘은 날이 너무 춥다보니 온수를 섞어 마셔야 할것 같아 그렇게 했다. 수저도 셋팅하려 하다가 수저통이 내 앞에 있지도 않고 너무 오버하는것처럼 보일까 싶어 그건 건드리지 않았다.

 찬거리가 셋팅되니 그제서야 두분이 서로 조금씩 대화를 하시던데 작업상황에 대한 얘기같았다. 나는 아는게 없으니 듣긴 들었으나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처음 시작은 "이렇게 추운날에 무슨 일을 한다고"라며 투정하는 듯한 대화였던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식사 중간쯤에 반장님이라 불리는 분과 다른 분 한분에 더 오셨고 나를 포함하여 총 다섯명의 인원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본인은 혼자 식사할땐 느긋하게 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과 밥 먹을때는 눈치를 봐가며 속도를 맞추곤 한다. 역시나 이 직종 사람들은 밥을 오지게 빨리 먹는다. 나도 밥을 국에 말아서 후르륵 마시듯 먹고는 다른 분들과 함께 일어났다.

 이렇게 기대도 안한 날에 일감을 받아 두번째 노가다 일을 하게 되었다. 다음 후기는 다음 포스트에... 지금 일 끝나고 와서 바로 타이핑 하는거라 힘들어서 더 못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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