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6일 금요일

노가다: 노가다라고 힘든 일만 있는건 아닌듯

 2018-01-24 수요일 오전, 오후



이끌림 샤시 - 이미지출처 링크

 이전에 시멘트 옮긴 현장에서 떠나 차로 3분쯤 이동해서 다른 현장으로 도착했다. 내가 보기엔 거의 작업이 끝난 건물처럼 보였는데 아마도 마감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것 같았다. 여기서 지시받은 일은 일단 창틀에 붙어 있는 보호 필름이나 기타 잡다한 것들을 전부 제거하고 곳곳에 보이는 스티로폼 같은걸 잘라내는 일이었다.



폼 단열재 - 이미지 출처 링크


 이 거품을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지금 검색해봤는데 폼 단열재라고 한다. 아마도 위 사진처럼 거품같은걸 쏘면 시간이 지나 굳어서 딱딱해지는 재질인것 같다. 이런게 마감한 벽 사이로 곳곳에 삐져나와 있었다. 노가다 일을 하기 전에는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바닥쪽에 삐져나온 폼을 제거할땐 바닥을 긁게 되므로 커터의 날이 쉽게 닳았다. 이 작업 끝날때까지 칼날을 자르거나 하면서 3개 교체했다. 소장님도 칼이 안들면 교체하면서 작업하라고 하셨다.



개그맨 김병만

배우 박철민


 다른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나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던 분을 '작업 소장'이라 불렀다. 이 분은 겉보기에는 그냥 흔한 인부처럼 보였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개인적으로 작업도 하시고 전화도 걸고 받고 하면서 부지런히 다니셨다. 그런걸 보면 아마도 직책이 높은분인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분을 소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분 이미지는 뭐랄까... 개그맨 김병만씨에 배우 박철민씨를 적당히 믹스한것 같은 인상의 분이셨다. 일이 끝난 지금의 시점에 생각해보니 쓸대없이 사람 스트레스 주지 않는 타입이다. 이런 분만 만난다면 노가다 일도 할만할것 같다.

 노가다라고 하면 게임할때 mmorpg의 노가다는 단순 반복 작업을 말한다. 실재 노가다도 마찬가지다. 그게 어떤 형태이든 작업이 끝날때까지 같은걸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솔직히 보호 필름 떼어 내고 커터칼로 폼 자르는거 중고등학생만 되도 다 할 수 있다. 다만 쉬지않고 계속 하니까 힘든것일뿐. 나는 담배도 피지 않으니 중간중간에 자재 옮기라는 지시 받았을 때를 제외하곤 계속 이 작업을 반복 했다.

 어떤 창문은 내 키보다 높기도 하므로 사다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보호 필름을 제거했다. 그런데 이게 접착력이 높은건지 잘 안 떨어진다. 어떤건 사이사이에 껴서 잘 빠지지도 않는다. 그런건 커터칼로 잘라가면서 작업 했다. 장갑을 껴서 손 감각이 둔하니까 일이 잘 안되길래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작업했다. 건물 안쪽이라 바람은 안불지만 이날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였다. 손이 너무 시렵다. 그리고 계속 손톱으로 잡고 뜯고 하다보니 엄지, 검지 손톱도 아프다. 그래도 이 정도면 노가다 중에선 정말 쉬운 일이다. 작업소장님이 일일이 감시하면서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

 '이런 일만 받으면 노가다도 할만 하겠네'하며 작업하는데 더럽게 안가는 시간도 결국 흐르기 마련이고 배꼽 시계는 어떤 시계보다 정확하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 무렵 6층짜리 건물의 작업이 끝났고 1층에서 드릴로 콘크리트를 부수고 있던 소장님께 내려가니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 후기가 일 끝나고 바로 쓰는게 아니라 기억을 더듬어서 쓰는거라 이날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소장님이 반주로 소주를 시키시곤 한잔 주셨다.

 "한잔해"

 "제가 술을 잘 못해서 한잔만 하겠습니다"

 "그려"

 한잔을 비우고 밥을 먹고 있는데 소장님이 자작으로 소주 서너잔을 드시더니 말씀 하셨다.

 "처음하는 사람들은 한번에 그렇게 오르려면 힘들어. 올랐갔다 내려갔다 해야지. 그 작업반장 봤지? 그 양반은 한번에 6층까지 올라가. 처음하는 사람은 한층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식으로 해야 할만해."

 "그런걸 곰방이라고 하는거죠?"

 "그렇지. 안해본 일이라서 힘들거여. 보통 사람은 못해."

 그러고보니 새벽에 시멘트 옮기고 받았던 데미지도 어느정도 회복된것 같았다. 소장님 식사 속도 보면서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데 '다 먹으면 먼저 가보라'고 해서 밥을 마저 비우고는 자리를 일어났다. 사실 속으로는 밖이 추우니까 좀 더 있고 싶었는데 먼저 가라니까 어쩔 수 없이 나왔다.

 현장으로 다시 도착하니 다들 밥 먹으러 가서 아무도 없는데 혼자만 움직이는것도 좀 오바다 싶고, 보통 밥 먹고 조금 좀 쉬지 않나 싶어서 불 붙여 놓은 알콜 말통 앞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잠시 후에 소장님이 오셨고 따라 오라길래 따라서 올라갔다.

 다음으로 지시받은 작업은 섀시의 필름이 아니라 방 내부에 있는 필름의 제거였다. 내가 지금 이걸 필름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정확한 명칭이 뭔지는 모른다. 아무튼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먼지가 많이 날리므로 오염되지 말라고 문이나 문틀에 붙어있는 투명 시트지 같은건데 이걸 제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시작점도 없고, 손톱으로 긁는다고 해서 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커터칼로 한쪽을 그은 다음에 살살 들어내고 찢어내야 했는데 이건 섀시에 붙어있는것보다 몇배는 안 떨어졌다. 그런데 제품의 겉면에 주의사항이 써있는데 칼을 쓰지 말란다. 아니 칼을 안쓰면 이걸 무슨 수로 떼어 내라는거여. 그래서 가능하면 칼집 자국이 안나거나 티가 안나는 곳을 그어가며 작업했다.

 부착하고 시간이 오래되면 제거가 힘들어지므로 시공이 완료되면 속히 떼어내라는 문구가 써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건지 뭔지 진짜 더럽게 안 떨어졌다. 그렇게 낑낑대면서 방의 보호 필름들을 떼어냈다. 기본적으로 이 작업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소장님이 이거 옮겨라 저거 옮겨라 하시면 물건을 옮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당시에 폰을 가방에 넣어 놨었는데 가방이 다른 현장에 있었으므로 시간을 몰랐다. 소장님이 오시더니 "시마이 시마이"라고 하시길래 하던걸 중지하고 따라갔다.

 "시간이 좀 지났네. 사인지 줘봐"

 "아 저쪽 현장에 있는데요."

 "그래? 어차피 나도 이동해야 하니까 같이 가자"

 그래서 차를 타고 처음 도착했던 현장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사인지에 사인을 받았다. 돌아갈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므로 물티슈로 먼지 투성이인 옷을 좀 닦으려고 하니까 가방에 넣어놨던 물티슈가 꽁꽁 얼어버렸다. '진짜 오늘 엄청 춥긴 추웠나보구나 어떻게 이렇게 얼어버리냐'하는 생각을 하며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와 물티슈를 샀다. 물티슈로 대충 옷을 닦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런데 무릎이 다시 아프다. 평지나 계단 올라간땐 그나마 나은데 계단 내려갈때 미칠것 같다. 다리가 아프니 빨리 걸을 수도 없어서 천천히 갔더니 사무소에서 안오냐고 전화가 왔다. 사무소에 거의 다 도착하니 거의 18시가 다 되었다. 일을 퇴근 시간 조금 넘어 한 탓도 있고 다리가 아파서 빨리 걷지 못한 탓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16시 30분을 퇴근 시간으로 잡는것 같다.



맘스터치 싸이버거

 이렇게 두번째 노가다가 끝났고 역시 수수료를 제외해서 114,000원을 받았다. 집에 가는 길에 atm에 들렀다가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산 후 맘스터치에서 싸이버거를 포장해왔다. 맛있다는 말만 들었지 처음 먹어봤는데 역시 '싸이버가가 갑'이라는 말을 인정? 응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첫날과 달리 몸상태가 괜찮아서 내일 또 일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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